
기소 — "면역력을 올려야 한다"는 말의 함정
환절기만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문구가 있어요. "면역력을 높이세요." 건강식품 광고에서도, 약국 팝업에서도, 유튜브 건강 채널에서도 이 말을 해요. 마치 면역력이라는 게 게이지처럼 있어서, 뭔가를 먹으면 쭉쭉 올라가는 것처럼 표현하잖아요. 그런데 솔직히 "면역력이 떨어졌다"는 말이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예요. 저도 그랬거든요.
저는 한때 감기를 달고 살았어요. 한 달에 한 번은 목이 아프고, 코가 막히고, 몸이 으슬으슬했어요. 당연히 "내 면역력이 약한가 보다"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비타민C를 고용량으로 먹기 시작했어요. 유산균도 바꿔봤고, 홍삼도 먹어봤어요. 한 달에 건강보조식품에 쓰는 돈이 7만 원이 넘었어요. 그런데 감기는 여전히 왔어요. 돈만 쓰고 달라진 건 없었어요.
나중에서야 알게 됐어요. "면역력을 높인다"는 표현 자체가 마케팅 용어에 가깝다는 걸요. 의학적으로는 면역 체계를 무작정 '강화'하는 게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아요. 면역 체계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그게 바로 자가면역질환이거든요. 류마티스 관절염, 루푸스, 크론병 같은 질환들이 면역 시스템이 너무 활발해서 자기 몸을 공격하는 상태예요. 면역은 '강할수록 좋은' 게 아니라 '균형이 잡혀야 좋은' 거예요.
증거 조사 — 면역 체계는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가
면역 체계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두 가지를 알아야 해요. 하나는 선천 면역(innate immunity)이고, 다른 하나는 적응 면역(adaptive immunity)이에요. 선천 면역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방어 시스템이에요. 피부, 점막, 위산, 그리고 백혈구 중 일부가 여기에 해당해요. 외부에서 뭔가 들어오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일단 막아내는 1차 방어선이에요.
적응 면역은 좀 더 정교해요. 특정 병원체를 기억하고, 다음에 같은 놈이 들어오면 빠르게 대응하는 시스템이에요. 백신이 이 원리를 이용한 거예요. 약화된 병원체를 미리 넣어줘서 적응 면역이 학습하게 하는 거죠. 한번 홍역에 걸리면 다시 안 걸리는 것도, T세포와 B세포라는 면역 세포가 그 병원체를 기억해두기 때문이에요.
중요한 건, 이 두 시스템이 하나의 영양제로 한꺼번에 '부스트'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면역 체계는 수십 종류의 세포, 수백 가지 화학 물질, 여러 기관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는 네트워크예요. 특정 성분 하나를 대량 투입한다고 전체 시스템이 좋아지는 구조가 아니에요. 비유하자면, 축구팀의 골키퍼 실력을 올린다고 해서 팀 전체 성적이 좋아지는 게 아닌 것과 같아요. 수비도 튼튼해야 하고, 미드필더도 잘 뛰어야 하고, 전체 전술이 맞아야 하잖아요.
그렇다면 "면역력이 떨어졌다"는 말은 뭘까요. 대부분의 경우, 면역 체계 자체가 약해진 게 아니라 면역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인 거예요. 수면 부족, 만성 스트레스, 영양 불균형, 운동 부족 같은 생활 습관 문제가 면역 세포의 활동을 방해하는 거죠. 면역력을 '높이는' 게 아니라 면역력이 '제대로 작동하게 만드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거예요.
반론 — 우리가 믿었던 건강식품들, 진짜 효과가 있을까
가장 먼저, 비타민C. 노벨상 수상자 라이너스 폴링이 비타민C 메가도스를 추천하면서 유명해졌는데, 이후 수십 편의 연구를 종합 분석한 코크란 리뷰(Cochrane Review)에 따르면, 비타민C를 매일 200mg 이상 복용해도 감기 예방 효과는 없었어요. 다만 감기에 이미 걸린 후 회복 기간을 약 8% 정도 단축하는 효과는 있었대요. 감기가 7일에서 6.5일로 줄어드는 정도예요. 효과가 아예 없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죠.
다음으로 유산균(프로바이오틱스). 유산균이 장 건강에 도움이 되고, 장이 면역의 70%를 담당한다는 말은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장에 면역 세포가 많이 분포해 있다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유산균 보충제를 먹으면 면역이 좋아진다는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아직 과학적으로 확실히 입증되지 않았어요. 2019년 네이처(Nature)에 실린 연구에서는 유산균 보충제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효과를 내지 않는다고 밝혔어요. 이미 장내 미생물 환경이 건강한 사람에게는 효과가 미미할 수 있다는 거예요.
홍삼, 프로폴리스, 아연, 비타민D 등도 마찬가지예요. 각각의 영양소가 면역 세포의 기능에 관여하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걸 보충제로 대량 섭취한다고 면역이 '강화'되는 건 아니에요. 결핍 상태에서 정상 수준으로 채우는 건 의미가 있어요. 하지만 이미 충분한 상태에서 더 넣는다고 더 좋아지지는 않아요. 물이 가득 찬 컵에 물을 더 붓는 것과 같은 거예요.
제 경험이 딱 이랬어요. 비타민C, 유산균, 홍삼을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서도 감기를 달고 살았던 이유를 나중에서야 찾았어요. 원인은 보충제가 아니라 수면이었어요. 당시 저는 매일 밤 1시에 자서 6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하고 있었거든요. 하루 5시간 수면. 아무리 비싼 보충제를 먹어도, 수면이 5시간이면 면역 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어요.
판결 — 면역 체계가 진짜로 필요한 것들
자, 그러면 실제로 면역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뭘 해야 할까요. 가장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부터 이야기해볼게요. 첫째, 수면이에요. 이건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해요. 2019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6시간 미만으로 자는 사람은 7시간 이상 자는 사람보다 감기에 걸릴 확률이 4.2배 높았어요. 수면 중에 면역 세포인 T세포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사이토카인이라는 면역 물질이 분비되거든요. 잠을 줄이면 이 과정이 방해받아요.
둘째, 규칙적인 중강도 운동이에요. 하루 30~60분 정도의 걷기, 조깅, 자전거 타기 같은 유산소 운동은 면역 세포의 순환을 촉진하고, 만성 염증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어요. 다만 과도한 운동은 오히려 일시적으로 면역 기능을 저하시킬 수 있어요. 마라톤 같은 극한 운동 후에 상기도 감염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연구가 있거든요. 적당히, 꾸준히가 핵심이에요.
셋째, 스트레스 관리예요. 만성 스트레스는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을 지속적으로 분비시키는데, 코르티솔이 높은 상태가 계속되면 면역 세포의 반응성이 떨어져요. 스트레스를 아예 안 받을 수는 없으니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나만의 방법을 가지고 있는 게 중요해요. 산책, 명상, 취미 활동, 친구와 대화 같은 것들이요.
넷째, 균형 잡힌 식사예요. 특정 영양제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음식을 통해 여러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는 게 중요해요. 채소, 과일, 단백질, 건강한 지방을 매일 적정량 먹는 것. 화려하지 않지만 이게 면역의 기본이에요. 그리고 다섯째, 백신 접종이에요. 적응 면역을 가장 확실하게 훈련시키는 방법이에요. 이건 보충제가 대체할 수 없어요.
저는 보충제 7만 원을 줄이고, 대신 11시 30분에 자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어요. 처음 2주는 쉽지 않았지만, 한 달이 지나니까 감기 빈도가 눈에 띄게 줄었어요. 석 달 후에는 감기 한 번 안 걸렸어요. 보충제를 먹을 때보다 안 먹고 잘 자는 지금이 훨씬 건강한 거예요. 면역력은 사서 올리는 게 아니라, 잠자고 움직이고 쉬면서 지키는 거예요. 오늘 밤, 30분만 일찍 자보는 건 어떨까요. 그게 어떤 영양제보다 확실한 면역 관리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