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건 접수 — "허리가 아파요, 디스크인 것 같아요"
작년 가을이었어요. 아침에 일어나는데 허리가 뻣뻣하면서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어요. 양치하려고 세면대 앞에 서는데 허리를 구부리기가 힘든 거예요. '이게 뭐지?'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심해졌어요. 의자에 앉아 있으면 둔한 통증이 계속 올라오고, 일어설 때마다 허리 아래쪽이 뜨끔했어요.
그때 제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딱 하나였어요. 디스크. 주변 사람들한테 이야기하니까 반응도 비슷했어요. "디스크 아냐? 나도 그렇게 시작했는데." "빨리 MRI 찍어봐." "디스크 터지면 수술해야 돼." 갑자기 무서워졌어요. 아직 30대인데 벌써 디스크라니.
그래서 정형외과를 갔어요. X-ray도 찍고, 문진도 받고, 이것저것 검사를 했어요. 결과가 나왔는데, 의사 선생님이 담담하게 말씀하셨어요. "디스크 아닙니다. 근육이 뭉친 거예요." 허탈하면서도 안심이 됐어요. 그런데 동시에 궁금해졌어요. 왜 우리는 허리가 아프면 자동으로 디스크를 떠올리는 걸까? 그리고 디스크가 아니라면, 대체 뭐가 허리를 아프게 하는 걸까?
그날부터 저는 허리 통증의 진범을 찾기 위한 수사를 시작했어요. 오늘은 그 수사 결과를 공유하려고 합니다.
용의자 프로파일 — 허리 통증을 일으키는 5가지 진범
용의자 1호: 근막통증후군(Myofascial Pain Syndrome)
가장 흔한 범인인데, 의외로 많은 분이 이 이름조차 모르세요. 근막은 근육을 감싸고 있는 얇은 막이에요. 오래 앉아 있거나 같은 자세를 반복하면 이 근막에 통증 유발점(trigger point)이 생겨요. 딱딱하게 뭉친 부위를 누르면 다른 곳까지 통증이 퍼지는 게 특징이에요. 저도 이게 원인이었어요. 하루 8시간 이상 의자에 앉아서 모니터를 보는 생활이 허리 근막을 망가뜨린 거였어요.
용의자 2호: 추간판 탈출증, 일명 디스크
모두가 의심하는 그 디스크. 척추뼈 사이에 있는 디스크(추간판)가 밀려나와서 신경을 누르는 거예요. 이건 허리 통증만이 아니라 다리까지 저리거나 당기는 방사통이 특징이에요. 그런데 실제로 허리 통증 환자 중 디스크가 원인인 경우는 전체의 약 5%에 불과하다고 해요. 대한척추신경외과학회 자료에 따르면, 허리 통증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의 85% 이상이 비특이적 요통, 즉 근육이나 인대 문제라고 합니다. 생각보다 디스크 비율이 낮죠?
용의자 3호: 천장관절 기능장애(Sacroiliac Joint Dysfunction)
천장관절은 골반 뒤쪽, 엉덩이 윗부분에 있는 관절이에요. 이 관절이 틀어지거나 염증이 생기면 허리 아래쪽에서 엉덩이 쪽으로 통증이 나타나요. 오래 서 있거나, 계단을 오르거나, 한쪽 다리에 체중을 실으면 아파지는 게 특징이에요. 다리를 꼬고 앉는 습관이 있는 분들이 이 문제를 자주 겪어요. 저도 다리 꼬는 습관이 있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이것부터 고치라고 하셨어요.
용의자 4호: 척추관 협착증(Spinal Stenosis)
이건 주로 50대 이상에서 나타나지만, 요즘은 젊은 층에서도 늘고 있어요. 척추 안에 있는 신경 통로가 좁아지면서 신경을 압박하는 거예요. 특징적인 증상이 있어요. 걸을 때 다리가 저려서 멈추게 되고, 앉아서 쉬면 좀 나아지다가, 다시 걸으면 또 저려요. 이걸 '간헐적 파행'이라고 해요. 디스크와 다른 점은, 허리를 앞으로 구부리면 오히려 편해진다는 거예요.
용의자 5호: 스트레스성 근긴장
이게 가장 의외의 범인이에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리 몸은 무의식적으로 근육을 긴장시켜요. 특히 목, 어깨, 허리 근육이 딱딱해지거든요. 마감에 쫓기거나,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한 상황이 지속되면 허리 근육이 만성적으로 긴장된 상태가 돼요. MRI를 찍어도, X-ray를 찍어도 아무 이상이 없는데 허리가 계속 아프다면, 스트레스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아요.
현장 감식 — 집에서 해보는 자가 테스트
물론 정확한 진단은 병원에서 받아야 해요. 하지만 병원 가기 전에 대략적인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자가 테스트가 있어요. 저도 나중에 알게 된 건데,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이에요.
테스트 1: 하지직거상 검사(SLR Test)
바닥에 누워서 한쪽 다리를 쭉 편 채로 천천히 올려보세요. 60도 이하에서 허리부터 다리까지 찌릿한 통증이 내려가면 디스크를 의심할 수 있어요. 반대로 허리만 뻐근하고 다리에는 아무 느낌이 없다면, 디스크보다는 근육 문제일 가능성이 커요.
테스트 2: 통증 유발점 확인
허리 양쪽, 척추에서 2~3cm 떨어진 부위를 엄지손가락으로 눌러보세요. 단단한 매듭 같은 게 만져지면서 누르면 통증이 확 퍼지나요? 그렇다면 근막통증후군일 가능성이 높아요. 이 통증 유발점은 때로는 엉덩이까지, 때로는 허벅지까지 통증을 보내기도 해요.
테스트 3: 자세 변화 반응
허리를 뒤로 젖히면 아프고 앞으로 구부리면 편한가요? 아니면 반대인가요? 앞으로 구부릴 때 편하면 협착증 쪽, 뒤로 젖힐 때 편하면 디스크 쪽에 가까워요. 어떤 자세에서든 비슷하게 아프다면 근육 문제일 확률이 높고요.
테스트 4: 스트레스 체크
최근 2주간 스트레스 수준을 0점에서 10점으로 매겨보세요. 7점 이상이면서 다른 테스트에서 특별한 소견이 없다면, 스트레스성 근긴장일 수 있어요. 실제로 허리 통증과 스트레스의 상관관계는 여러 연구에서 확인되고 있어요. 2019년 유럽 척추학회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직업 스트레스가 높은 그룹이 낮은 그룹보다 만성 요통 발생률이 2.3배 높았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참고용이에요. 통증이 2주 이상 지속되거나, 다리 저림이 동반되거나, 대소변 장애가 있다면 반드시 병원에 가셔야 해요. 특히 대소변 장애는 응급 상황이에요.
수사 결론 — 허리 통증, 이렇게 대처하세요
제가 병원에서 진단받고 나서 한 일은 생각보다 단순했어요. 고강도 치료가 아니라, 생활 습관 교정이었어요.
첫째, 1시간에 한 번 일어나기. 타이머를 맞춰놓고, 1시간마다 일어나서 30초만 서 있었어요. 스트레칭까지 할 필요도 없었어요. 그냥 서 있는 것만으로도 허리 근육의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어요. 2주쯤 되니까 오후에 허리가 뻐근해지는 빈도가 확 줄었어요.
둘째, 의자 세팅 바꾸기. 모니터 높이를 눈높이에 맞추고, 의자 등받이에 허리가 닿도록 깊이 앉았어요. 쿠션 하나를 허리 뒤에 두는 것만으로도 체감 차이가 꽤 컸어요. 우리 허리는 자연스러운 C자 커브가 있는데, 의자에 얕게 앉으면 이 커브가 무너져요. 그게 근육에 부담을 주는 거예요.
셋째, 코어 운동. 거창한 게 아니에요. 플랭크 30초짜리를 하루에 세 번. 이게 전부였어요. 코어 근육이 약하면 허리가 모든 하중을 혼자 감당해야 해요. 코어가 튼튼하면 허리의 부담을 분산시켜줄 수 있어요. 3주 정도 하니까 확실히 허리가 단단해진 느낌이 들었어요.
넷째, 스트레스 관리. 저는 매일 자기 전에 10분간 호흡 운동을 시작했어요. 4초 들이쉬고, 7초 멈추고, 8초 내쉬는 4-7-8 호흡법이에요. 이게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켜서 근육 긴장을 풀어준다고 해요.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는데, 2주쯤 지나니까 잠들기 전에 허리가 편안해지는 걸 느꼈어요.
이 네 가지를 한 달 정도 병행했더니, 아침에 일어날 때 뻣뻣하던 허리가 거의 괜찮아졌어요. 물론 저는 근막통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원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예요. 디스크나 협착증이라면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합니다.
오늘 이 글을 읽으시면서 "나도 허리가 아픈데, 원인이 뭘까?" 생각이 드셨다면, 일단 병원에 한번 가보세요. 디스크라는 선입견 때문에 무서워서 미루는 분들이 정말 많은데, 실제로는 대부분 근육이나 자세 문제예요. 빨리 원인을 알수록 대처도 빨라지고, 회복도 빨라져요. 혹시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댓글로 이야기해주세요. 같이 이야기 나눠봐요.